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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아티스트 및 컬렉터 소개

나와 타인의 경계를 사유하다. 발작버튼(balzacbutton)(2)

by 정브랜 2021. 12. 4.

**발작버튼 작가님의 작가 소개와 이전 프로젝트들이 궁금하다면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edge-s.tistory.com/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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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ated by jungbran #01 - balzacbutton

(Peer to Peer 프로젝트에 대한 인터뷰 내용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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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계속해서 질문드릴게요. 드디어 <Peer to Peer> 인데요. 이 프로젝트에는 특이한 작업 방식이 있다고 들었어요. 이에 대해 조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제 작업들은 포토샵으로 편집한다거나 글리치 효과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오류를 캡처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순서를 알려드리면...

 

  1) 다운로드가 완료되기 전에 다운로드를 중지해서 결함이 있는 영상 파일을 만든다.

  2) 결함이 있는 영상을 강제로 재생시킨다.

  3) 파열된 이미지를 캡처한다.

 

여기서 모든 파열된 이미지를 캡처하는 게 아니라 제가 보기에 아름다운 화면만 캡처하고 있어요. 프레임 단위로 탐색하며 보기 좋은 장면이 나올 때까지 반복합니다. 그래서 매 파일마다 결과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 낚시하듯이 괜찮은 장면이 나올 때까지 반복하는 수행적이고 공예적인 과정이 있죠. 우연성에 기댄 작업이지만, 저의 통제와 희박한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입니다. 예쁜 돌이나 조개껍데기 줍는 것처럼 말이에요."

 

 

9. 이렇게 나온 작품들이 사실 어떤 의미에서 작가님이 사유하시는 의미들을 담아내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 이에 대해 말씀드리려면 제 작업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좀 더 설명드려야 할 것 같네요. <Peer to Peer>는 토렌트(Torrent)를 사용해 탄생한 작업물이에요. 토렌트에 대해 먼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P2P(Peer to peer)의 일종으로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공유된 파일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게 제공되는 서비스이죠. 토렌트는 공유되는 파일을 일정한 크기의 조각(Piece)으로 나눠서 이 조각 단위를 공유하는데, <Peer to Peer> 작업의 각각의 제목들은 사용한 파일의 조각 수를 따라 붙인 겁니다.

 

그리고 토렌트의 씨앗 파일(Seed file)을 실행하면 해당 파일 조각을 가지고 있는 전 세계 이용자들로부터 자료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데 이 이용자들이 피어(Peer)이고 피어는 위치나 속도 등과 상관 없이 순수하게 랜덤으로 선정됩니다. 그리고 송신자와 수신자의 역할이 실시간으로 바뀌기 때문에 파일 조각을 다운로드하는 동시에 업로드하게 돼죠. 그러니까 만약 제가 파일을 다운받는다면, 해당 파일을 다운 받는 동안 저도 다른 피어들에게 조각들을 나눠 주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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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감이 조금 오기 시작한 것 같아요. 송수신자 역할의 모호성 그리고 연결성이 핵심 사유와 연결되는 포인트일 것 같네요. 

 

"맞아요. 여기서 로이 애스콧이라는 작가가 말한 텔레마틱 아트(Telematic art) 개념을 소개드리고 싶은데요. 아주 옛날 말이긴 한데, 네트워크 기술을 활용한 예술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애스콧이 말한 텔레마틱 문화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네트워크에 참가하는 것이 신체로부터 이탈해서(즉, 물리적 한계를 뛰어 넘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시간적 제한 없이 연결해 줌으로써 지구 규모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는 내용이에요. 40년 전 쯤 나온 개념이니까 그때 상상만 하던 게 이제는 너무나 일상 같을 수 있죠. 예를 들면 원격현전(Telepresence, 사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가 아닌 다른 위치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끔 하는 일련의 기술)이라는 게 예전에는 대단한 것이었을 수 있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하잖아요. 우리는 이제 네트워크를 통해 어디에나 동시에 존재할 수 있어요. 모든 게 빠르게 움직이는 시대를 넘어서 더이상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단순히 기술로만 접근하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애스콧은 더 나아가서 텔레마틱 시스템을 거의 융의 집단 무의식의 실체적 버전 급으로 보고 있어요. 우리가 타자와 떨어져서 홀로 생각하고 사물을 보고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불교 사상처럼 말이에요. 이 텔레마틱 시스템 안에서 창조성은 공유되고 작가성은 분산되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면, 텔레마틱 시스템은 상호작용적이기 때문에 관찰자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참가자에요. 그래서 네트워크를 통해서 데이터라는 형태로 유통된 예술가의 의미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상호작용의 결과로 의미가 생성되기 때문에 창조성이 공유된다는 것이죠. 제가 느끼기에 이 텔레마틱 시스템이 결국 메타버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제 작업의 프로세스와 핵심 사유가 이 텔레마틱 아트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앞서 말했듯 토렌트를 이용해서 파일을 다운 받을 때 파일 조각들을 나눠주는 피어는 위치나 속도에 상관 없이 순수하게 랜덤으로 선정 되고 송신자와 수신자의 역할이 실시간으로 바뀌잖아요. 네트워크에 참가하는 피어로서 파일 조각을 나눠 주는 행위, 시딩(Seeding)을 중지해서 파일 조각을 더 이상 나눠 주지 않기로 결심한 행위, 저 또한 피어들로부터 조각을 받다가 중지하는 모든 과정이 작업에 포함되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파일 조각들이 무작위적으로 충당돼서 이미지의 추상성과 구체적 형상의 정도가 결정돼요. 그래서 어찌 보면 폭력적으로, 토렌트를 이용해 본 익명의 피어들을 모두 제 작업의 공동창작자로 소환하는 거죠. 굳이 그 참가자들이 실제로 제 작업에 대해 알고 특정 시드 파일을 공유하는 등의 의식적 활동을 하지 않아도 네트워크에 참여한 자체만으로도 창조성을 공유한 셈인거죠."

 

*로이 애스콧(위키피디아) : https://en.wikipedia.org/wiki/Roy_Asc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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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럼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에 나타나는 결함들이 의미하는 바는 어떤걸까요?

 

"디지털은 항상 아날로그의 매끈한 외양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어요. 얼마나 더 고화질인지, 얼마나 실제와 같이 연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에 따라 디지털 이미지의 위계가 결정돼 왔죠. 하지만 <Peer to Peer> 작업을 보면 부분적으로 픽셀 블록들이 드러나요. 고해상도의 시대에서 픽셀 단위를 드러낸다는 건 컴퓨터 파일로서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죠.

 

브레히트의 연극도 비슷한 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어요. 전통적인 극에서는 관객이 감정이입하고 몰입하게 하는 것이 목표잖아요? 하지만 브레히트의 연극은 이것이 연극임을 계속 알려주고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해요. 그리고 구조주의 영화라는 게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필름 자체의 물성을 드러내죠. 보통 전통적인 영화에서는 이것이 필름인지 모르게 하기 위해서 이음새를 보이지 않게 하고 노이즈를 제거해서 관객들을 환영에 빠지게 하는데 반해, 구조주의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이게 필름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보여주죠. 전통적인 표현 개념에서는 매체가 사라져야 표현이 완성된다고 말하지만 브레히트의 연극이라든지 구조주의 영화는 매체를 드러냄으로써 관객이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참여하게 만드는 장치로서 활용합니다.

 

제 작업으로 다시 돌아가, <Peer to Peer>의 이미지들은 픽셀 블록들이 드러나 보임으로써 인터넷 상에서 순환하는 디지털 이미지의 존재 방식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네트워크로부터 이격되는 경험을 떠올리게 하죠.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거나 할 때 스트리밍하는 영상이 조각 나고 흐릿하게 보인다거나, 툭툭 끊기고, 화면이 깨져서 보이는 경험은 대부분 해봤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깨어 있는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기계와 한 몸이었다가 그런 오류에 직면했을 때에서야 매개의 존재 사실을 인식하게 돼죠. 저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기계 장치를 사용해서 온라인 상에 원격현전하다가 네트워크로부터 튕겨져 나오는 이런 경험이 저를 다른 시간 축에 가져다 놓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디지털 상의 오류가 정말 재밌는 것 같아요.

 

이를 글리치(Glitch)라고 하는데, 이 글리치가 브레히트 연극에서의 소격 효과(낯설게 하기)같은 거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글리치 아트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미디어 자체의 매끄러운 표면과 안정성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고 기계를 인식하게 하는 겁니다. 혹자는 글리치를 유사 글리치(Glitch-alike)와 순수 글리치(Pure Glitch)로 나누는데, 유사 글리치는 어플로 주는 글리치 효과 같은 거라고 보면 돼요. 그리고 순수 글리치는 실제 오류를 만들어 내거나 발견하는 거고요. 그래서 보통 우연적이죠.

 

글리치 아트를 만드는 방법 중에 데이터벤딩이라는 게 있는데, 다른 매체의 편집기로 파일을 불러오는 방법을 말해요. 예를 들어 사진을 음악 편집 프로그램으로 불러 와 편집한다거나 하는 거죠. 즉, 글리치 아트의 요지는 반항이고 소프트웨어를 정해진 방법으로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에 대한 거부에요. 제가 파일을 올바르게 다운받지 않고 중간에 멈춰서 결함 있는 파일을 만들고 평화로운 생태계를 훼방 놓은 것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는 거죠."

 

*베르톨트 브레히트(위키피디아) : https://ko.wikipedia.org/wiki/%EB%B2%A0%EB%A5%B4%ED%86%A8%ED%8A%B8_%EB%B8%8C%EB%A0%88%ED%9E%88%ED%8A%B8

*구조주의 영화(위키피디아) : https://en.wikipedia.org/wiki/Structural_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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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제 마지막 질문일 것 같은데요. 작가님께서 Peer to Peer 작품들을 만들며 포르노를 활용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이에 대해 한 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스펙터클을 스펙터클로 저항한다' 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스펙터클은 아시다시피 대단한 장관이나 화려한 구경거리를 의미하죠. '기 드보르'라는 작가는 현대 사회를 스펙터클의 사회라고 말했어요. 사람들이 진정성이라든지 비판적인 사고를 잃어버리고 매스미디어를 통해 모든 것이 상품화 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했죠. 드보르는 마르크스 주의자라 다소 과격할 수 있지만, 포르노라는 건 자본주의 세계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극단적이고 대표적인 상품화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인터넷으로 가장 많이 검색되고 공유되는 주제기도 하고요. 일반적으로 포르노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허구적인 것을 계속 욕망하게 하면서 관객들을 스펙터클의 사회에 머물게 하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포르노에 대해 옳다 그르다 평가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정신을 호도하는 모든 것이 포르노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스펙터클=포르노인 거고, 사람들에게 스펙터클을 인지하게 함으로써 스펙터클에 대해 비판하고 생각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스펙터클을 스펙터클로 저항한다'라고 첫 문장에서 표현했던 거에요."

 

*기 드보르와 스펙터클의 사회(편지지님이 작성한 브런치 글) : https://brunch.co.kr/@jijipyun/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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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er to Peer 작품들이 토렌트를 통해 얻어진 작업물이지만 블록체인과 탈중앙화라는 이념과 기술에도 접목해본다면 새로이 기획해볼 수 있는 포인트들이 분명 있어보인다. 분산 저장되어 있는 해시값들 사이에서 그리고 이미 너무나 당연하다는듯이 겪고 있는 수많은 오류들이 Peer to Peer와 닮아있다. 지금은 이런 오류들이 잦기에 블록체인 세상(스펙터클)이 블록체인임을 깨닫고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 기술의 발전 즉 누구나 공감하는 버전의 메타버스가 실체화되는 세계가 온다면 이런 오류를 인지시키는 예술적인 움직임들이 또 있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씬에 들어오고 이렇게 깊은 철학과 주제의식을 가지고 사유하고 있는 작가님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 고마운 것 같고, 작가님의 앞으로의 활동도 계속해서 응원해보고자 한다. 작가님 화이팅.)

 

 

 

*발작버튼 작가님 주요 링크

 

트위터 : https://twitter.com/balzacbutton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balzacbutton

오픈씨 :https://opensea.io/balzacbutton

유튜브 : https://youtu.be/z3LdJINr2Hc

노션 : https://rustic-jellyfish-34b.notion.site/balzacbutton-543873a0eac54157aa8d18ab6edf54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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